알렉산드르 타라소프


21세기 초 러시아의 좌익

오늘날 러시아에서 모든 좌익은 - '좌익'의 범주에 속하는 여러 정치 세력의 분류가 얼마만큼 과학적이고 타당한가 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 대략 커다란 두 개의 동등한 부분, 즉 러시아 연방 공산당(KPRF)과 기타 군소 정당으로 분리되어 있다.

KPRF: 사이비 공산당


가장 규모가 크고 가장 잘 알려진 좌익 세력은 물론 KPRF이다. 그러나 이 정당이 다름 아닌 좌익에 속한다는 것은 전통과 이름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좌익 정당의 압도적 다수와 재야 정치학자들은 KPRF를 좌익과 연관시키지 않는 경향이 있으며, 심지어는 KPRF가 오히려 우익 전통주의, 민족주의 정당이라는 견해도 있는데 이런 생각은 아주 합당한 것이다.
KPRF가 그 명칭에도 불구하고 결코 공산주의 정당이 아니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자체의 목적과 기본 방침, 이념, 전략, 전술 그리고 심지어는 ‘사회적 기원’의 면에서 볼 때도 KPRF는 사회-민주주의와 포퓰리즘, 민족주의를 결합한 정당이다. 이는 ‘제 1 세계’ 국가들에서는 흔하지 않은 모습이지만 ‘제 3 세계’ 국가, 예를 들어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광범위하게 퍼진 형태이다. 아르헨티나의 페론주의자와 페루의 아프리스트 (Alianza Popular Revolucionaria Americana-APRA는 멕시코에서 1924년에 창당되고 주로 페루에서 활동을 벌인 제3세계주의적 반제국주의적 정당이다. 목적은, 노동자뿐만 아닌 페루 사회의 여러 계층을 통합시켜 외세에 대항하는 것이었다 – 역주)들이 그런 유형의 정당의 고전적인 본보기이다. 두 정당이 수 차례 정권을 잡았지만 어떠한 혁명도 일어나지 않았고 어느 누구도 사유재산 제도를 폐지하지 않았으며 사회주의가 정착되지도 않았다.
KPRF의 공식 이론가인 겐나지 쥬가노프 당수도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만일 그의 책을 읽는다면 여러분은 그 책에서 쥬가노프가 성경과 교회 주교들과 20세기 초 러시아 종교 철학자들, 신우익 이념가와 신 자유주의자들(러시아에서 종족 중심의 사학 이론을 창립시킨 레프 구밀료프로부터 프렌시스 후쿠야마에 이르는)의 말을 풍부하게 인용하고 있으며 어떠한 경우에도 맑스와 레닌에게는 주의를 기울이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공산주의자를 지지하는 보통의 유권자들은 쥬가노프의 책을 읽지 않았으며 KPRF도 선거운동 기간에는 전체적인 반항적 분위기에 편승해서 유권자들에게 “러시아에서는 혁명의 최소한의 가능성도 다 사라져 버렸다”라는 쥬가노프의 말을 상기시키지 않으려 노력한다.
유권자는 KPRF의 가장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이다. KPRF 유권자의 주요 다수는 ‘습관적으로’ 쥬가노프 진영의 정치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며 은퇴한 연령의 노인들이다. 이들 이외에 KPRF는 자기 통제하에 있는 주지사들과 기타 지방 권력이 선거운동 기간에 강력한 ‘행정력’을 동원하는 소위 ‘붉은 띠’) 중부 러시아에서 연방 공산당이 주지사들을 당선시킨 연방 공산당의 영향권을 말함 - 역주
지역에서만 오로지 성공을 기대할 수 있다. 현 정권에 강력하게 반대하는 경향의 보다 젊은 유권자들은 최근 몇 년간의 경험이 보여주듯이 이미 KPRF에 대해 환멸을 느꼈거나 또는 (드물지만) 누구든 다른 사람을 지지하거나 또는 (더 자주) 선거를 어떤 진지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아무도 지지하지 않는다. 그러나 연금생활을 하는 전통적인 KPRF 지지자조차도 실제로는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혁명이 아닌 거의 생활 보장을 받지 못하는 주민 계층을 위해주는 국가적 온정주의 정책에 찬성한다. 바로 그런 이유로 쥬가노프에게 투표한 사람들이 최근의 대통령 선거에서 푸틴을 우호적으로 지지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푸틴에게서 국가적 온정주의 노선으로 나아가는 한 인간을 보았기 때문이다.
선거에서 KPRF는 전통적으로 유권자들의 세 가지 다른 범주의 목소리들을 결집하는데 첫째로 ‘이름만 보고’ 지지하는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사상의 지지자들과 둘째로 소련에 대한 단순한 향수를 지니고 ‘브레제네프 시대와 같은’ 안정을 갈망하는 사람들과 셋째로 최근 일련의 개혁에 직접적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 즉 의당 반항적인 유권자의 표를 모은다. 이것은 모두 합해서 전체 투표수의 약 25%를 차지한다. 그러나 상황이 변하고 있다. 공산주의 사상의 지지자는 KPRF 자체의 공산주의적 특성, 그리고 중요한 것은 러시아에서 의회적 방식의 투쟁의 효율성을 더욱더 의심하고 있다. 과거의 향수에 취해 사는 사람들은 천천히 육체적으로 사멸해 간다. 반항적인 유권자가 남지만 바로 이들이 가장 마음이 변하기 쉬운 사람들이다. KPRF를 지지하는 그들의 표가 레베지 (몇 년 전에 사고로 사망한 국가주의적 경향의 군부 정치인 – 역주)와 지리노프스키 (극우파 정치인 – 역주)에게로 옮겨간 예가 이미 있었다. 그밖에도 반항하는 유권자는 가장 분산되기 쉬운 유권자인데 그래서 이들은 다양한 급진주의자들(좌익뿐만 아니라 우익도 포함해서)에게 투표하거나 아니면 모두에게 반대한다.
KPRF 내부 문제도 적지 않다. 당의 원칙이 신성한 만큼 KPRF는 이 문제들을 주도면밀하게 숨긴다. 다시 말해 집안 싸움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어디로 사라지겠는가. 첫 번째 문제는 당원의 지속적인 축소이다. KPRF 지도부는 지금도 이따금 ‘50만 당원’을 회상한다. 이 50만 당원은 결코 있었던 적이 없었지만 당이 실제로 20만 명 이상을 형성한 것처럼 보이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겨우 5만 명이 있다. KPRF가 ‘연금생활자 정당’인 만큼 지난 10년 동안 많은 활동가들이 그만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다른 사람들은 나이든 연령의 사람들보다 더 많은 이유로 ‘조직과의 관계를 상실했다. 쉽게 이야기하면 일부는 이미 걷지 못하고, 또 일부는 이미 노망이 든 셈이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 누구누구는 아직 당원 명부에 들어있으며 누군가는 이미 없다.
청년들을 당원 명부에 올리려는 모든 시도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청년들을 위한 KPRF의 이념은 매혹적인 것이 아니었다. 여러 콤소몰 (소비에트 시대에 생긴 공산 청년 동맹 – 역주)은 최근 10년 동안 진짜 좌익이 되고 쥬가노프의 «기회주의와 수정주의»를 비판하면서 KPRF에서 불가피하게 떨어져 나갔다. KPRF의 마지막 창조물인 공산주의청년연합(SKM, ‘소코몰’)은 아주 가련한 인상을 자아내고 있다. 그것의 존재는 단지 KPRF가 권력 옆에 위치하고 있어 예산으로 ‘자신의’ 공산청년동맹원들을 장악할 능력이 있는 곳에서만 어느 정도 눈에 띤다. 그래서 지방 KPRF 조직자의 자식들이 자주 ‘소코몰’의 관제 지도자가 된다. 출세지향적인 이들은, 실질적인 재야 활동을 할 준비는 전혀 안돼 있다. 만일 그런 ‘콤소몰 지도자’가 외국에 나가 그곳에서 젊은 좌익 활동가와 만난다면 양측은 강력한 문화적 충격을 경험하는데, ‘소코몰 구성원들’은 서구의 좌익 청년들의 ‘무질서’, ‘무책임’, ’쁘띠 부르주아적 행동’에 당황하며 서구의 좌익 청년들은 ‘소코몰 구성원들’의 ‘부르주아적 체제순응주의와 관료주의’에 경악한다.
이 경우 KPRF에는 여느 때처럼 스스로를 속이는 기만이 발생한다. 평범한 ‘소코몰 구성원들’- 예를 들어 칼루가 (중부 러시아 도시 – 역주)와 우파 (우랄 지역 도시 – 역주) 출신들은 사석에서 여러분들에게 KPRF 중앙위원회 간부회 임원의 도착에 즈음해 어떻게 ‘원로 공산주의자들’이 ‘소코몰’ 회의의 대중성을 보장해주는지 이야기해줄 수 있다. 방법은 한 가지다. 교장과 교사들 대부분(연금생활자 또는 연금생활 직전의 연령자)은 KPRF의 구성원이며, 강요된 질서 속에 학생들을 모스크바에서 온 당 지도자들이 자세히 지켜보는 가운데 집회에 몰아넣는 그런 기술학교를 상상해 보면 된다. 집회에 가지 않는 사람은 시험에 통과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당의 양측은 서로 만족하면서 헤어진다. 사상적인 동기에서 쥬가노프의 콤소몰에 가입한 바로 그 소수의 사람들은 당원의 그러한 추태들을 본 다음에는 KPRF에서 떠나는데 어떤 이는 정치에서 완전히 떠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자신의 소규모의 좌익(급진 좌익) 조직을 만들기도 한다. 공식적으로 소코몰은 약 5만 명으로 구성되지만 이들의 압도적 다수는 사회 생활에 결코 참여하지 않는 ‘죽은 혼’( 러시아가 낳은 위대한 산문 작가 고골의 작품명으로서 실제로는 죽었지만 행정관청에 신고가 되지 않아 살아 있는 것처럼 여겨져 주인공의 사업 거리로 거래되는 죽은 농노를 의미한다 – 역주) 들이다. 게다가 그들 가운데 3만 명은 크라스노다르 변강주에서 활동하는 조직이다. 그 조직은 주지사의 돈으로 만들어졌는데 많은 교육 기관에서 조직의 모집은 억압적인 위협 아래 강제로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이 조직은 소코몰 중앙위원회의 결정에 복종하지도 않고 심지어는 회비를 모스크바에 전달하기를 거부하면서 주지사의 이익에 오로지 봉사했다. 소코몰 지도부의 무기력은 크라스노다르 조직의 ‘분리주의’와 어쩔 수 없이 화해해야만 했다는 사실에서도 이미 드러난다.
전통적으로 산업체 노동자가 많았던 KPRF 조직들이 무엇보다 빨리 몰락하게 되었다. 지방에서 KPRF가 ‘붉은 대표이사’(공산당과의 전통적 관계를 계속 가지는 기업계의 실세들, 주로 군수 업체의 대표 이사들 – 역주)에게 지나치게 재정적으로 의존하는 한 노동자와 지방 행정부 사이의 많은 갈등에서 KPRF는 반드시 행정부 편을 든다. 그리하여 ‘노동자 계급의 정당’은 바로 노동자 계급에서 자신의 위치를 성공적으로 훼손시켜 버린다. 지방의 노동조합 활동가들은 노동자들이 KPRF에 대한 지지를 마침내 중단해버린 경위와 이유를 이야기해 준다. 예를 들어 사마라주(불가강 주변의 지역 - 역주)에서 한 ‘붉은 대표이사’는 KPRF를 지지하는 전단을 자기 공장 사보에 실었다. 그리고는 개인적으로 몰래 자기 자동차로 그것을 이웃 지역으로 옮겼다. 그 당시 자기 공장에서 그는 ‘막가파’ 자본가로서 행세했으며 노동조합을 파괴하려고 했었다. 툴라주(모스크바 근방의 지역 - 역주)의 야스노고르스크에서 노동자들이 위장 파산을 용납하지 않기 위해서 기계 제작 공장을 점거했을 때, 지역 KPRF는 이 파산을 의도한 ‘붉은 대표이사’의 요구로 노동자에 반대하는 완벽한 경찰 폭력을 휘둘렀다. 대체로 KPRF가 권력과 밀착되어 있지만 모든 것을 100% 통제할 수 없는 곳(예를 들어 크라스노다르 변강주의 경우처럼)에서 쥬가노프 정당은 주민들의 인기를 급속히 상실해 버린다. 그리하여 니제고로드주의 호디레프 주정부 권력에 밀착해 있던 길지 않은 기간이 얼마 전에 있었던 주 의회 선거에서 처음으로 단 한 명의 공산주의자도 선출되지 않는 결과를 낳게 되었던 것이다!
KPRF에는 그들의 공식적인 주장에도 불구하고 의견의 일치란 없다. 비밀주의 방식이 심각한 당 내부의 모순을 숨길 수 있게 해준다(예를 들어 현존 지도부와 KPRF의 모스크바 도시 위원회의 서기관으로 활동하는 알렉산드르 쿠바예프가 이끄는 급진 그룹 사이의 모순을 숨긴다). 따라서 당에서는 단지 재정적인 문제와 관련된 갈등이, 그래서 숨기는 것이 불가능한 갈등만이 표면으로 붉어져 나온다. 사실, KPRF 재정의 주요 원천 가운데 하나는 크레믈린 행정부인데 다시 말해 KPRF가 공개적으로 ‘반인민적 정권’이라고 부르는 바로 그 사람들이다. 재정 확보 방식은 간단하다. 군수산업체에 ‘국가의 군수품 조달 비용’ 명목으로 할당된 돈의 일부가 여러 펀드를 통해 KPRF의 금고로 향한다. KPRF 지도부에서 가장 큰 공개적 갈등, 즉 쥬가노프와 국가 두마(러시아 공화국의 의회를 말함 - 역주) 의장인 겐나지 셀레즈네프, 그리고 부의장 겸 러시아 인민애국연합(NPSR) 집행위원장 겐나지 세미긴과의 갈등은 비록 ‘이념적인 갈등들’로 위장되긴 했지만, 실제로는 처음에는 셀레즈네프가 나중에는 세미긴이 KPRF에서 실권을 잡기 위해 크레믈린 돈의 흐름을 ‘마음대로 조종하려’ 했던 것에서 발생했다. KPRF에 대해 강력한 압력의 지렛대를 지닌 크레믈린이 이 ‘반대’당에 ‘게임의 규칙’을 지킬 것을 강요할 수 있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바로 이런 추측을 통해 1996년 선거의 2차 결선투표에서 쥬가노프가 스스로 진정한 경쟁을 벌이지 못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오늘날 KPRF는 90년대에 국가 재산을 분배하던 시기에 ‘파이를 받지 못하게’ 된 일부 소비에트 노멘클라투라들의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대표하는 아주 비혁명적인 정당이며 전형적인 의회 정당이다. 경제적 측면에서 KPRF는 일부는 크레믈린에 일부는 국가 예산, 또 일부는 ‘붉은 대표이사들’(약 40개 주에서 KPRF는 본질적으로는 ‘대표이사의 로비’ 명령의 집행자이다)에 의존하고 있다. KPRF는 자신의 전통적인 지지자를 더 많이 잃었으며 비전통적이고 저항적인 사람들에게는 덜 매력적인 존재가 되었다.
크레믈린에 의해 고정된 게임의 규칙을 바꾸려는 시도는 기다릴 필요조차 없게 되었다. 그런 시도를 위해서는 원외 행동을 위한 준비된 대중적 토대가 필요한데 그런 토대가 KPRF에게는 없다. 원외 투쟁의 경험도, 그런 투쟁을 준비하는 요원들조차도 없다. KPRF는 오랜 동안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으며 정치력마저도 천천히 그러나 점차적으로 약화되고 있다.

기타 군소 정당

KPRF를 제외하고 러시아의 좌익은 다음과 같은 비교적 적은 수의 그룹으로 나타난다. 급진적 공산주의자, 무정부주의자, 트로츠키주의자, ‘신 좌익’, 급진적 생태주의자(‘녹색주의자’), ‘반세계화주의자’, ‘무산계급주의자’ (당장의 노동계급 해방을 외치는 급진 단체들 – 역주), ‘대항문화주의’(지하 문화 운동을 벌이는 재야의 소장파 좌파적 보헤미안들) 등이 그것이다. 약간의 그룹은 자기들 스스로 극단적 좌익 사상과 우익 사상의 일정 부분을 결합하지만 실제로는 좌익 조직에 더 끌리는 국가-볼셰비키 (러시아 민족의 중흥을 외치면서도 정통 자본주의보다 집단주의적 체제를 더 선호하는 과격 국가주의 단체 – 역주)를 형성한다.
가장 영향력이 적은 경향이 무정부주의자들이다. 언젠가 ‘페레스트로이카’ (1985-91년간 공산당의 개혁정치 시기 – 역주) 시절에 무정부주의자들이 전국적으로 상당한 규모의 조직체들을 보유하며 그들의 잡지 ‘오브쉬나’ (공통체라는 의미의 러시아어 – 역주)는 오랫동안 양질의 비공식 잡지로 여겨졌다. 그들이 적극적인 선전을 하고 젊은이들에게서 관심과 존경을 받았다. 이 모든 것은 과거의 일이다. 오늘날 러시아에서 활동하는 무정부주의자의 소규모 그룹은 희화적 성격을 지니며 아무에게도 두려움을 주지 못하고 그들의 미래 또한 없다.
무정부주의자들에 의해 가끔 발행되는 출판물들은 언어의 빈약함(자주 러시아 문학어는 그 속에서 속어로 대체된다), 선언적 어조, 주제의 편협함, 유아성(게다가 이들 출판물이 주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자주 그런 청소년들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것을 고려하면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다), 지적 결핍 등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그 이유를 설명하기란 아주 쉽다. 오늘날 무정부주의자 그룹에 나오는 많은 수의 젊은이들은 주로 지능이 뛰어나지 않고 공부도 못하며 지적으로도 미적으로도 발달되지 못한 펑크족들(혹은 소위 펑크족에 가까운 사람들)로 구성된다. 이 모든 것에 더해서 젊은 무정부주의자 계층은 알코올 중독과 마약 중독이라는 강력한 이미지로 우리를 놀라게 한다.
훨씬 많은 수의 활동적 급진 공산주의자 청년 조직, 즉 콤소몰이 있다. 사실 러시아에는 통합된 하나의 콤소몰은 없으며 12개의 서로 다른 콤소몰이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그들 가운데 일부는 서로 협력하고 있고 일부는 적극적으로 충돌하고 있다. 원래 콤소몰은 ‘성년’ 공산당의 청년 조직으로서 발생했다. 그래서 러시아 공산주의 청년 연합(RKSM)이 KPRF의 청년 조직으로서 발생했듯이 RKSM에서 분리된 RKSM(b), 즉 혁명적 공산주의 청년 연합은 러시아 공산주의 노동자 정당(RKRP)의 청년 조직으로서 발생했다. 마찬가지로 붉은 청년 아방가르드(AKM)도 ‘노동 러시아’의 청년 조직으로서 발생했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모든 것이 얽혀버렸다. RKSM이 KPRF로부터 ‘자유로운 행보’를 걷자 (RKSM의 지도자인 I. 말랴로프는 브레제네프 손자와 함께 얼마 전 자신들이 ‘새로운 공산주의자 당’을 만들 것임을 선언했다) 연쇄적인 분열이 RKSM을 흔들었다(현재 활동하고 있는 콤소몰의 대부분은 바로 RKSM에서 떨어져 나온 ‘분리파들’이다). KPRF가 새로운 ‘주머니’) 통제하기가 용이하다는 의미 - 역주
콤소몰(SKM)을 만든 것은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사실 많은 지역에 SKM을 만드는 것이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그 대신 KPRF는 ‘적대 관계’에도 불구하고 ‘떨어져 나간’ RKSM를 계속 운용해서 KPRF의 청년 지부로 실질적으로 내세운다. 동일한 사람들이 SKM에도, AMK에도 가입하는 더 이상한 경우가 있는데 그리하여 콤소몰 조직들은 당장 더 이익이 되는 ‘원로 공산주의자’를 지지하면서 몇몇 공산당 사이에서 실용적으로 균형을 유지한다.
사회적, 문화적, 지적 관계에서 보면 지금 존재하고 있는 콤소몰들은 매우 이질적이다. 그것들 가운데 가장 최초의 콤소몰(오늘날 이것은 지도자 역할을 하고 있다)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과거 소비에트 콤소몰 VLKSM의 주요 활동가들이다(러시아에서는 오늘날에도 A. 예제르스키를 우두머리로 하는 동일한 명칭의 조직이 있는데, 하지만 이 조직은 ‘지도자’를 제외한 누구도 대표하지 않으며 젊은이들의 어떠한 지지도 받지 못하고 있다) 두 번째 콤소몰은 통상 KPRF(RKRP 등등)의 지방 당 조직 지도자들의 아이들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 콤소몰처럼 그들은 경력면의 성장을 목표로 했으며 무엇보다 ‘성년’ 조직에서 자신들을 알아주고 ‘위로’ 끌어주길 원한다. 세 번째 콤소몰은 신자유주의 개혁으로 인해 심하게 고통을 당하는 가정 출신의 아이들로 이루어져 있다. 통상 그들의 부모는 스스로 좌익적 견해를 고수하는데, 그래서 이 가정 출신의 아이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여러 유형의 콤소몰들과 나란히 자본주의와 싸우러 간다. 비록 예외는 있지만 무엇보다 자주 이들은 학문 분야의 종사자, 공업-기술 분야의 종사자 그리고 자격증을 갖춘 노동자 가정 출신의 젊은이들이다.
러시아 콤소몰들은 끊임없는 말다툼과 스캔들, 상호 고발과 폭로 등으로 누명이 자자하다. RKSM과 RKSM(b) 그리고 또한 RKSM에서 이탈한 러시아 마오주의자 당(RMP)은 슬프게도 술주정으로 유명해 졌다. 콤소몰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마르크스주의 속의 ‘새로운 이론’에 대해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구태의연한 ‘이론가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콤소몰 구성원들의 일반적인 이론 수준은 높지 않다. 물론 전체적으로는 무정부주의자보다는 높은 편이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그런 종류의 콤소몰에 가입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자본주의에 대한 증오이며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임의의 거대 조직에 소속되려는 노력이다. 만일 KPRF가 그런 형태에 가장 가까운 조직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젊은이들은 SKM에 가입했으며 만일 RKRP가 그런 형태의 조직이면 RKSM(b) 등등에 가입했다. 그런 ‘당의’ 콤소몰에 가입한 젊은이들은 몇 년 후 보통 그 ‘연상의 동지’들을 ‘자본주의의 가짜의 적’이라고 여겨 실망하여서, 보다 ‘혁명적인’ (RMP같은) 공산청년 조직들을 만들거나 완전히 정치에서 떠나기도 한다.
소규모의 ‘성년’ 공산당과 관련된 문제는 그들의 활동이 덜 눈에 띤다는 것이며 특별한 활약을 보여주지도 못하며 KPRF처럼 당원의 부족과 ‘연령’병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러시아에는 18개의 소규모 공산당이 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것이 RKRP, 즉 공산주의자 러시아 당(RKRP-RPK)인데 구성원들의 수는 평가자에 따라서 1만 명에서 1만 2천 명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이것은 스탈린주의(특히 당의 가장 큰 지부, 정확히는 RKRP가 이 병을 심하게 앓았다. 2002년 전까지는 RKRP와 RPK는 독립 정당으로 활동했다)에 대한 노골적인 애정을 지닌 정통적 ‘소비에트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이다. 자랑삼아 드러내는 급진주의에도 불구하고 RKRP-RPK는 KPRF의 예, 즉 ‘공식적인’ 야당인 의회 정당임을 표방한다. 러시아의 몇몇 지역에는(특히 쮸멘주와 케메로보주에서) KPRF가 나머지 다른 지역에서 하는 바로 그 역할을 RKRP-RPK가 실질적으로 하고 있는 지구들이 있다. 이론적인 차원에서는 KPRF와는 다른 RPKRP-RPK의 유일하고 신중한 차이점은 사회-민주주의적 방침에 대한 혐오이며 또한 의회적 방식을 통해 소비에트 권력과 생산 수단용 국유 재산의 환원을 이룩하려는 것이다(이 경우에,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스탈린 때 소비에트의 진정한 권력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여기는 RKRP-RPK는 KPRF보다는 덜 스탈린주의적인 조직이다).
나머지 소규모 공산당 중에서는 빅토르 안필로프가 이끄는 ‘노동 러시아’(정치 활동을 하고 있지만 아주 미미한 수준이다)와 거의 동일한 명칭을 지닌 두 정통-스탈린주의 정당, 즉 전 연방 볼셰비키 공산당(VKPB, 지도자는 니나 안드레예바)과 전 연방 (볼셰비키) 공산당(VKP(b), 지도자는 알렉산드르 라삔)만이 정치 활동을 하고 있다. 그밖에도 페테르부르크에는 RKRP-RPK가 통합될 당시 거기에서 떨어져 나온 공산주의자 지역 정당(RPK, RegPK)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RegPK는 반스탈린주의와 인터내셔널주의적인 입장을 지속적으로 고수하고 있으며 20세기 후반의 서구 좌익 사상의 성과를 볼셰비키 사상과 결합하는 이념을 만들어내길 기대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RegPK는 ‘반세계화’ 운동에 용감히 참여하여, 트로츠키주의자와 심지어는 국가-볼셰비키와 과감하게 교류하고 있다.
나머지 소규모 공산당은 본질적으로 크지 않은 정치 파벌인데 어떠한 사회적 또는 이념적 영향을 지니고 있지 않다.
오늘날 러시아에서 트로츠키주의 조직은 그 수효가 훨씬 적다.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에 국내에서 발생한 트로츠키주의 집단의 대부분은 해체되었다. 2~3명으로 구성된 초소형 파벌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좋다. 실제로 러시아에는 혁명노동자당(RRP)과 ‘사회주의적 저항’(얼마 전까지 노동자 인터내셔널을 위한 위원회[KRI]라고 이름이 붙여져서 이 조직의 구성원은 지금까지 ‘크리슈니키’라고 지칭된다)이라는 모두 2개의 트로츠키 조직이 활동하고 있다. 게다가 RRP는 전 러시아를 통틀어 60명 정도가 있는데 얼마 전에 두 파벌로 분리되어 어떠한 독립적인 활동도 할 능력이 없다. RRP가 하는 모든 것이란 인터넷에 자신의 사이트를 유지하고 다양한 전체 좌익 집회와 시위에 정기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사회주의적 저항’ 역시 질적으로 다르다. 이 조직은 여러 도시(예를 들어 보로네슈에서 ‘맥도날드’ 반대 켐페인 전개 등)에서 꽤 성공적으로 활동하며 급속히 성장한, 젊은이들의 마음을 끄는 트로츠키주의 조직이다. 이 집단은 청년 대학생(주로 인문학도들)에게는 특히 매력적인데 시간이 갈수록 더 믿음직스럽게 ‘사회주의적 저항’은 유럽의 고학력 좌익과 밀접하게 연관된 매우 지적인 청년 집단의 모습을 형성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트로츠키주의자는 독단주의자와 분리파의 명성을 지닌다. ‘사회주의적 저항’은 (트로츠키주의자에게는) 특이하게도독단적이지 않고 분리를 최소화하는데 초점을 맞춘 조직이다. 이 조직은 다른 좌익 청년 조직(심지어는 트로츠키주의자의 화해할 수 없는 적인 스탈린주의자와도 교류하며 그리고 심지어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닌 무정부주의자와도 교류한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고 있으며 좌익 전체의 반파시스트 청년 동맹 LAS(러어 «Levoe Anrifashistskoe Soprotivlenie»의 약칭)의 주도 세력이며 러시아 노동당과 ‘세계는 상품이 아니다’라는 ‘반세계화’ 운동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비록 사회 여러 계층의 젊은이가 조직에 들어오기는 하지만 압도적인 다수는 특히 지식인 가정 출신의 대학생들이다.
젊은이들에게는 급진적 생태주의자들(’녹색주의자’)이 꽤 인기가 있다. 러시아에서 ‘녹색당’의 급진주의자들은 주로 사회-생태 연합과 ‘그린피스’와 ‘무지개의 수호자’의 러시아 지부 주변에 모여 있다. 게다가 ‘수호자’들을 무정부주의적 생태주의자 조직, 즉 지금까지 언급한 조직 가운데 가장 좌익적인 조직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다른 경향의 좌익 청년들과는 구별되는 급진적인 생태주의자들의 특징은 높은 ‘당원 이동률’이다. ‘녹색’ 조직에 들어오려는 고학년 고교생들 같으면, 뒤죽박죽된 사상과 그런 사상에 근거해 어떻게든 환경 관리 분야에서 파생되는 독단주의를 저지시키거나 그것도 안 되면 제한시키고자 하는, 다시 말해 관료와 사업가들에 의한 수렵금지구역과 자연보호구역의 파괴와 약탈, 숲의 야만적인 벌채, 불법적인 사냥, 토지의 점유 등등을 중단시키려는 유일한(아주 납득하기 쉽고 자연스러운) 갈망이 보통 작동한다. 이들 신병들 가운데 많은 수는 진실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인정할 필요는 있지만 그들은 그다지 교양이 있지는 않으며 아주 순진하다. 자주 그들의 견해를 좌익적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지역에서의 전반적인 부패, 자연보호법의 명백한 위반에 대한 권력의 보호, 위생 기준을 준수할 의사가 없는 사업자와 그 사업자의 이익을 위해 국민 건강에 끼쳐진 막대한 손해, 정치적 전횡과 박해 등등과 맞닥뜨릴 때, 이들 젊은이들은 마침내 신념을 지닌 자본주의의 반대자가 된다.
자주 그들은 지나치게 좌경화되어서 생태주의자 조직에서 떠나 예를 들어 무정부주의자들에게 가기도 한다. 즉 급진적인 ‘녹색당’ 집단은 종종 젊은이들을 위한 ‘정치 투쟁 학교’로서 나서기도 한다. 그래서 젊은 층에 대한 그들의 실제적인 영향의 정도는 그들의 공식적인 숫자보다 훨씬 더 크다. 예를 들어 ‘무지개의 수호자’에게는 고정된 회원수가 없고 조직은 단지 20~30명의 조직원을 지니지만 ‘수호’ 규칙에 따르면 ‘무지개의 수호자’가 벌이는 어떤 대규모 행동에 참가하기만 하면 각자는 스스로를 조직의 구성원으로 부를 수 있다. 매년 ‘무지개의 수호자’ 저항 캠프 참여자는 약 천 명에 달한다 (여름 동안 2개 내지 심지어는 3개 정도의 캠프를 조직하곤 한다). 그러니까 ‘무지개의 수호자’의 행동을 통해 모두 5~6천 명의 사람이 이 캠프를 거쳐갔다.
청년 좌익의 또 하나의 흐름은 ‘신좌익’이다. 이 흐름은 90년대 중반에 자체적인 개화기를 맞이했지만 그때부터 쇠퇴를 경험한다. ‘신좌익’의 대형 조직들 중에서는 ‘대학생 권리 수호’만이 살아 남았는데, 이 조직도 가면 갈수록 정치성이 얕아져가며 보통의 민주노조형 대학생 노조로 화한다. 그밖에도 ‘대학생 권리 수호’의 회원수는 당연히 대학교에서의 학업 기간으로(극단적인 경우에는 대학원 기간으로만) 제한되는데, 다시 말해 조직에는 막대한 ‘인원 변동’이 목격된다.
그러나 90년대 중반부터 수만 명의 사람들이 ‘대학생 권리 수호’를 거쳐갔으며 이 젊은이들 대부분은 반자본주의와 반정부 정치 활동의 일정한 경험을 얻었고 그들 가운데 많은 수는 ‘대학생 권리 수호’에 머물렀던 기간에 좌익 청년 조직에 가입했으며 오늘날에는 그곳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대학생 권리 수호’의 지적 수준은 전통적으로 높다. 한데  90년대 중반부터는 ‘대학생 권리 수호’의 구성원의 토대가 이전에는 주로 ‘공학도’와 인문학도로 이루어져 있었다면 지금은 특히 자연과학부(즉 생물학도, 화학도, 물리학도)에서 가장 커다란 집단을 형성하는 쪽으로 달라지고 있다. 압도적인 다수를 이루고 있는 것은 학문 분야 종사자와 대학교 및 초중고 교사 가정 출신의 아이들이다.
‘반세계화’ 운동도 빠르게 유행해지고 있다. 이 용어는 부정확하게 사용된 것이다. 왜냐하면 서구에서 ‘반세계주의자들’은 그 자체를 ‘새로운 반자본주의 운동’, 새로운 반독점자본 운동’ 또는 무엇보다 자주 ‘세계 민주화 운동’(DGD)으로 부르면서 ‘반세계화’ 같은 용어 이용을 삼가기 때문이다. 실제로 DGD는 세계화 자체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다국적 기업이 전 세계에 지우는 세계화의 그런 변수에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러시아에서 ‘반세계화주의자’들의 상당부분은 최근에 자기 자신들을 ‘대인적 세계화의 주장자’로 부르기도 한다.
러시아에서 DGD는 단지 첫발을 내디뎠지만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를 모으고 있다. ’ATTAK-러시아’, ‘세계는 상품이 아니다’, ‘ATTAK-모스크바’ 등 DGD의 전체 세 그룹은 비록 그것들이 교수들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주로 젊은이들(주로 대학생들과 대학원생들)로 구성되어 있다. DGD의 틀 속에서 무정부주의자도, 트로츠키주의자도, 콤소몰도, 급진적인 ‘녹색당’도, 그리고 심지어는 젊은 사회주의자와 사회-민주주의자들조차도 서로 협력하고 있다. DGD 에는 몇몇 대안적 노동조합들이 또한 참여하고 있다.
오늘날 ‘프롤레타리아주의자’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프롤레타리아주의자’란, 기타 계급에 대한 프롤레타리아의 계급적 우월성에 대한 대전제의 수용을 바탕에 두고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의 개별적 입장을 트로츠키주의 및 무정부주의적 노동조합지상주의의 개별적 입장과 결합하는 소비에트 이후의 특별한 현상이다. ‘프롤레타리아주의’에 가장 근접한 외국에서의 현상들은, 프랑스의 ‘우브리에리즘’ (트로츠키주의의 영향을 받은 노동계급 해방 운동)와 1960년대 ~1970년대 이태리-독일의 ‘오페라주의’(노동계급의 자율성을 강조했던 ‘노동계급 해방운동’ – 역주)라고 생각할 수 있다.
‘페레스트로이카’ 시절에 ‘프롤레타리아주의자’들은 매우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 그들의 최대의 조직체라고 할 ‘노동자 사회-정치 연합’(OPORa) 구성원의 수는 2500명을 헤아렸다. 현재 ‘프롤레타리아’ 조직 가운데 단지 OPORa만 살아 남았는데 그 수는 수십 명 정도로 축소되었으며 페름주를 제외하면 OPORa는 잘 드러나지 않고 있다.
마지막으로, 연구자들에 의해서 ‘새로운 대항문화’라고 지칭되는 또 하나의 좌파적인 청년들의 흐름도 있다. 이 경향은 불과 얼마 전인, 최근 약 2년 동안에 발생했으며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이 흐름과 관련하여 여태까지 <오브샤야 가제타>지에 한 편의 기사만이 발표되었다. 이 경향은 실제로 활동상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거나 혹은 전적으로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는 소규모 청년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들은 사람들의 주의를 끌려고 노력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모든 것으로 판단해 볼 때, 푸틴 정권이 반(半)파시스트(혹은 완전 파시스트)로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서구에서 나타난 이름난 좌익 경향 가운데 어느 것과도 관계를 맺고 있지 않다. 이 경향에 속하는 젊은이들은 주로 특정 매체 내지 음악단체를 중심으로 해서 결집된다. 이 조직들이 모든 곳에서, 심지어는 러시아의 각 공화국과 주 중심에서조차 나타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감안하면 틀림없이 작은 규모일 것이다.
KPRF에 포함되지 않은 모든 좌익 집단과 조직의 전체적인 수는 대략 KPRF 연합체 자체의 수와 동일하다. 그러나 극단적인 분열과 사상적 단절로 인해 이 집단들은 ‘진지한’ 정책의 수준에서 KPRF와 경쟁할 수 있는 능력이 물론 없다.
그러나 만일 KPRF와 다른 소련 공산당의 후계자들(소규모 공산당들)이 위기를 겪고 있으며 전반적으로 젊은이들에게 매력적인 존재가 아니라면 아주 시의적절하게 전통 ‘소비에트의’ 경향을 벗어난 대안적 좌익 조직인 급진적 생태주의자와 약간의 트로츠키주의자, 그리고 ‘새로운 대항문화’ 등은 현재로서 그 세가 확산, 강화돼간다.
러시아에는 서유럽 국가에 존재하는 것과 유사한 좌익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상황은 비록 매우 느리긴 하지만 확실히 바로 그런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